'자존감'이란 단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닌지 국어사전에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존심' 정도로 이해되는데, 자기 자신에 대한 오만함이 아니라 긍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런 정도로 이해한다면, '개인'과 '관계'의 조화가 필요한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자존감'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개인의 이해관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관계를 더욱 다지는 측면에서 자신을 지키고 더욱 고양시킬 수 있는 밑거름이 아닐까?

자존감은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삼성의 비리를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최근 펴낸 책에 실린 한 일화에서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되는 자존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책에 따르면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일가의 파티에는 연예인, 클래식 연주자, 패션 모델들이 초청됐다. 가수의 경우,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2~3곡을 부르고 3000만원쯤 받아간다. 이 전 회장 일가의 파티 초청을 거절하는 연예인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가수 나훈아다. 그는 삼성의 이같은 초청에 대해 “나는 대중 예술가다. 따라서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겠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장 표를 끊어라.”고 하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건희 전 회장의 자존감은 돈과 권력에 기반한 것이겠지만, 가수 나훈아의 자존감은 자신의 재능과 그것을 사랑해 주는 대중에 기반한 것이라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람마다의 자존감을 존중해야 마땅하지만, 어떤 자존감이 더욱 자신을 빛내고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분명해 보인다.


영화 '아바타'를 보면서 내내 불편했다.

파괴에만 능숙한 인간이라는 존재.
그에 비해 자연을 다시 되돌릴 능력이라고는 없는 존재.
아니, 기후변화회의에서 보인 것처럼 그럴 의지조차 없는 존재.

너무 많이 와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죽어라 강에다 삽질하겠다는 사람과
'나? 야당이야~'라며 힘으로만 맞서는 사람들과
어찌됐든 일단 나부터 돈 벌면 되지 않느냐며 보상 대상 토지에 가짜 비닐하우스용 쇠막대기를 꽂는 사람들과
자연과 함께 해야 할 인간에 대한 고민은 이미 강바닥에 쳐박혀 버린 현실이 슬프다.
시드니 셀던의 소설 중에 '오픈 유어 드림s'라는 소설이 있다.
'다중 인격 장애' - 우스개 소리로 '다중이'라 부르는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 질환 자체가 존재하느냐에 대해 아직 학계에서도 통일된 의견이 없다고 하는데,
그만큼 난해한 문제인 것 같다.

최근에 회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는데, 새벽에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내가 그런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회사 생활을 제외한 나의 일상을 보면 정말 '평범함' 그 자체다. 아니, 사실 추구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가능하면 튀지 않고, 안전한 길을 가는 것.
구두 하나, 행동 하나, 판단 하나... 그 모든 것이 마치 '무난함'을 향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 느낌이다.

반면 회사에서는 끊임없이 '변화'와 '도전'을 얘기한다.
'평범함'이 바로 회사에게는 죽음을 선고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조직의 한계라는 핑계로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항상 그 부분이 답답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개인의 평범함과 조직의 도전은 함께 가야 하는 것 같다.
이 둘 사이의 괴리가 클수록 나의 스트레스는 심해져 갔고,
어느 한쪽(대부분은 내 개인의 삶)이 크게 상처받고, 희생되는 것으로 결론나기 쉬웠다.

혹자는 그런 얘기도 한다.
정신병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다만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 따라 치료가 필요한지 여부가 결정된다.

나는 내 안의 '다중이'를 다스릴 수 있을까?
엄연히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인정하고, 포괄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그 고민이 해결되는 날, 아마도 나는 다시 밝은 얼굴로 사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일을 하다보면, 또는 다른 사람들이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참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결과물이 없어'라고 느낄 때가 있다.

어떻게 보면 기술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세의 문제 때문에 생기는 차이인 것 같기도 한데
어떤 이유 때문이든 이게 협업 과정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크게 보면 아무리 단순한 비즈니스라 할지라도 내부적으로는 개개인마다 나름의 전문성을 갖고 일을 하게 되는데
담당자가 일을 하는데 늘 구멍을 내거나, 완성도가 떨어지면
관리자는 믿고 일을 맡기기 어렵고,
협업을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만든 구멍을 메우기 위해 자신의 분야가 아닌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물론 잘 하는 경지에까지 오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얘기가 명언의 반열에 오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패와 성공의 차이는 어떤 일을 할 때 거의 맞게 하는 것과 정확히 맞게 하는 것의 차이이다.
-에드워드 사이먼스-
요즘 내가 하는 일 중 하나는 여러 웹 사이트와 제휴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소외 받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중/소 웹 사이트를 묶어
광고 매체로서의 규모를 키우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작업이 약간의 난관에 봉착했다.
웹 사이트들이 취지와 실행 방법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선뜻 손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기존의 관행이 있는데 눈 밖에 날 경우 그나마 들어오던 광고도 끊어질 수 있고,
다른 곳이 계약하면 '우리도 따라갈 수는 있다'는 식으로 템포를 늦추는 것이다.

100% 이해한다.
나 또한 처음 '온라인 광고'라는 산업분야에 들어와서 얼마나 많은 것이 답답했던가!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면 중/소 웹 사이트는 다시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아니, 점점 더 심해지는 대형 웹 사이트의 독과점 체제를 지켜만 봐야 할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뭐?
좌절도, 스피드도 아닌... 그들과 함께 갈 수 있는 확고한 의지와 새로운 방법인 것 같다.
바로 그것을 찾을 수 있느냐가 바로 나와 우리 조직의 힘이자 경쟁력이 될 것이다.

폭풍우를 만나야 누가 뛰어난 항해사인지 알게 된다. - 세네카

우리가 바로 뛰어난 항해사인지 아닌지 판가름 할 수 있는 시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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