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가 되면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 목록을 훑어보게 된다. 필요한 연락을 취하고 나면 오래되거나 의미없는 연락처를 지우게 되는데, 동시에 허전함을 느낀다. 이 수백 명 중 나에게 특별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되는가? 아니,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될까? 이제 와서 정신 차리고 연락을 하고 싶어도 통화 버튼 누르기가 쉽지만은 않다.
중요하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것. 그렇다고 갑자기 해결되지도 않는 것이 관계의 문제다. 그래서 아마도 관련 책들이 쏟아지는가보다. 다만 무슨 무슨, 몇 가지 법칙을 내세우며 관계(또는 인적 네트워크) 맺기를 독려하는 책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슈퍼맨이 아닌 이상 그 법칙들을 지키고 살 자신도 없거니와, 양적이고 피상적인 관계를 맺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관계가 결과를 바꾼다>는 조금 다른 깨달음을 준 것 같다. 관계의 중심을 '나'로부터 '상대방'으로 옮겨야 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책에 있는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이 책에 실린 것 중 가장 찔리는 사례인데, 첫 장에 실려있다. 좋은 선택이다.)
캐서린은 지금 세계적인 로펌의 고위 임원인데, 그 전에는 한 글로벌 기업의 법무 담당 부책임자였다. 역시 매우 중요한 자리였지만 외부 로펌이나 컨설턴트는 상사인 책임자와만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그녀를 비서쯤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녀가 법무 책임자로 승진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전화통은 불이 났고, 갑자기 인기인이 됐다. 그 상황에서 그녀는 정중하게 되물었다고 한다. "지난 5년 동안 뭐 하시다가 왜 이제야 이러시나요?"
'나'를 생각하면 '나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관계에만 빠지게 된다. 뭐, 그런 식이라고 해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관계는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다른 사람, 제품, 서비스로 대체 가능한, 그냥 주고받기에 불과한 것이다. 당장 눈 앞의 이익은 얻겠지만, 다시 새로운 관계를 찾아 허덕여야 하는 이유가 된다.
이 책을 읽고, 급한 마음에 만든 회사 홈페이지의 글을 일부 수정했다. 다시 보니 왜 우리가 이 일을 하는지, 왜 우리를 선택해야 하는지에만 집중한 티가 팍팍 났기 때문이다. 이제 회사 소개서도 수정하려고 한다. 사람을 만날 때 무슨 질문을 던지고 관심을 가져야 할지 먼저 준비하려고 한다. 일단 그것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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