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가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인터넷 본인확인제(실명제)를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관련기사)
이미 어느 정도는 예견됐지만, 구글이 한국화에 대해 몇 년 전부터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기 때문에
실명제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제하고자 하는 한국의 어리석음에 동참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은 나게 됐다.

좀 다른 얘기지만 그 기사를 보면서 며칠 전 술자리에서 지인과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그 분은 일이 있어서 동두천으로 출퇴근을 당분간 하고 있는데, 버스 안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버스 안에서 크게 떠들더니
급기야는 문이 열리면 한 명씩 뛰어 내려서 정류장 표식을 찍고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오는 게임을 하기 시작했단다.(예전에도 지하철에서 그런 식의 게임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들에게 버스 안은 공공장소가 아니었고, 동승한 승객들은 신경 쓸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었던 셈이다.

어쩌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을 두고 우리는 한동안 토론을 했고 교육과 문화의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문제를 풀어대는 스킬만 가르치는 교육의 문제야 제도로 풀어갈 수도 있다고 위안을 한다 쳐도,
문화라는 것은 규제와 도덕적 훈수로는 해결되지 않는 복잡하고도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
막걸리 두 주전자를 비울 때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술집을 나서야 했다.
좋은 것의 겉모습만 빠르게 흡수하지 않고 내재화 시키는 지난한 과정을 우리는 참을 수 있을까?

인터넷의 역기능은 분명 문제가 된다.
사례를 들자면 책이 아니라 DVD로 몇 개 쯤은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하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새로운 현상이나 문화가 나타날 때 역기능은 필연적인 것이고,
이를 받아들인다면 그것을 제도적으로 억압할 것인지, 순기능을 통해 자연스럽게 조절해 나갈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실명제는 억압의 길을 택한 산물이다.
다양성이라는 스펙트럼의 일부를 가리면 문제를 막을 수 있다는
순진한(혹은 다른 뜻을 가진 아주 저열한) 생각에서 나온 어이없는 정책이다.

어쩌면 우리는 '빠름'의 미학 속에서 언제나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끈질기게 갈등을 조정하기 보다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향해
돌격 앞으로!를 해버리면서 결국 용산참사 같은 일도 일어났던 것이 아닌가?

유튜브의 과감한(!) 결정에 박수를 보내야 할지, 국제적 망신이라며 얼굴을 붉혀야 할지 난감하다.
아니, 21세기에 만들어 갈 한국의 문화가 과연 얼마나 깊은 것이 될 수 있을지... 그게 더 걱정스럽다.

Posted by 아우구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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