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획회의'라는 잡지를 받았습니다. 출판계에 입문하고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됐는데, 출판인들이라면 누구나 보는 잡지이더군요. 처음에는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보통 업계에서 내는 잡지들은 그저 그런 내용과, 서로 띄워주기 정도 기사만 난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획회의'에는 출판계 내부를 향한 쓴소리도 실리고, 세상과 책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도 많아서 꼬박꼬박 읽게 됩니다.

그런데 9월 20일 발행판에 민음사 장은수 대표님의 '전자책의 충격을 넘어서 - 출판의 시각에서 바라본 전자책의 미래'라는 글이 실려서 유심히 읽어 봤습니다. 바로 며칠 전에 관련된 포스팅을 했었는데, 글을 읽으니 어쩔 수 없이 또 블로그를 열 수밖에 없게 되더군요.

장은수 대표님의 주장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전자책의 시대가 빠르게 오고 있다며 각종 증거가 제시되고 있는데(특히 통계!!!), 실제 그 의미를 뜯어보면 호들갑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언론에 보도된 수치를 잘 분해해서 근거를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봤을 때, "정보 기술 업체 쪽에서 쏟아내는 전자책 담론의 배후에는 투자를 통해 이득을 남기려는 금융자본의 욕망이 놓여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자책의 미래를 부정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다. "출판의 전자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시며, 다만 "출판의 전자책 담론은 정보 기술 쪽의 전자책 담론과 다를 필요가 있다."고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장은수 대표님의 주장 자체에는 100% 공감합니다. 출판에 관심있는 IT 업계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콘텐츠'로서 책의 가치를 주목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항상 디바이스와 유통 플랫폼만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 이들에게 전자책의 주도권을 내준다는 것은 IT 출신인 저마저도 상당히 위험한 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서 현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는거 아냐~"라고 주장만 한다고 미래가 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현재 수면 아래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이 싸움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저는 현재 상태가 지속된다면 디바이스와 유통, 그리고 거대 자본을 쥐고 있는 IT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저급한 금융자본의 욕망일지는 모르지만, "투자"를 통해 이용자에게 디바이스를 손에 쥐어주고, 그 속에 들어갈 콘텐츠의 공급 경로를 장악하는 것은 IT 업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출판사가 대동단결해서 콘텐츠 공급 자체를 원천봉쇄한다면 판은 달라질 수 있겠죠. 그렇다고 종이책의 판매량이 늘어나거나 최소한 현상유지라도 할 수 있을까요? 이용자들은 출판사의 이기적인 행태라며 댓글 폭탄을 퍼붓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출판계도 (독자가 아니라 인터넷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용자를 끌어 안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처럼 이용자들을 단순히 구매 대상으로 간주하고 '서평 이벤트'만 남발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완성도를 높여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IT는 살아남기 위해 Web 2.0 등의 담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그 길에 나섰고, 이용자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아마존이나 애플의 보도자료를 뜯어보며 얼만큼 뻥튀기가 되었는지 지적질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출판시장의 매출액 집계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여전히 '사재기'라는 악행이 남아있으며, 이익 좀 올리겠다고 필요없이 양장본 책을 만들어내는 행태부터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의 '책을 읽읍시다!' 만큼의 대국민 홍보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는 자사 이기주의부터 반성해야지요.

몇달 전 스카이 '베가' 휴대폰 출시 행사에서 제조사측은 아이폰4의 수신율 문제를 걸고 넘어졌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잡아도 수신이 잘된다."며 경쟁제품을 깎아내리는 공격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것도 자기 제춤 출시 자리에서 한 것이죠. 그러면서 박병엽 대표는 애플을 이기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하지만 '베가'는 사람들에게 외면 받았고, 10만대 판매에 그치고 있습니다.(물론 그렇게 된 이유는 많겠지만, 아이폰이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100만대를 돌파한 것을 생각해보면 큰 의미가 없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전자책으로의 이동이 불가피한 것이라고 한다면, 업계가 아니라 독자(그리고 이용자)를 중심에 놓고 출판계가 먼저 논의와 실천을 주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전체 파이를 키워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지, 지금처럼 네가 살면 내가 죽는다는 식의 대립은 결국 IT 업계에게만 기회를 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아우구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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