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TV의 한 프로그램에 가수 장윤정, 영화배우 진재영 두 명의 연예인이 가난했던 시절에 대해 얘기를 했다.
별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을 것 같지 않았던 그녀들... 사연은 이렇다고 한다.

장윤정은 대학생 시절 아버님 사업에 문제가 생겨 갑자기 집안이 큰 가난에 빠졌다고 한다.
하루는 등록금을 대출 받고자 은행을 가서 문의를 했는데,
사람 많은 창구에서 은행 직원이 모니터를 바깥쪽으로 홱 돌리더니 그러더란다.
"이정도면 휴대폰 개통하기도 힘들걸요?"
아버님이 지셨던 빚 수천만 원이 성인이 된 장윤정에게 고스란히 넘어온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가족은 가난의 긴 터널로 접어 들었고,
그야말로 생계형 이산가족이 되어 각자 입에 풀칠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살았다.

그녀는 3년 정도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너무나 추워서 헤어 드라이어로 이불 밑을 잠시 데워서 잠을 청하고,
새벽이면 추위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잠을 깨고, 또 데우고...

아무리 추워도 샤워는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따뜻한 물은 없고...
그럴 때면 그녀는 아래쪽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향해 쉬지 않고 뛰어갔다.
온몸이 데워지면 학교에서 찬물로 샤워를 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누군가 물었다.
"그 때 어떤 희망으로 살았나요?"

"옥탑방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그런 생각도 했었어요. 저 많은 집 중에 우리 식구가 모여 살만한 집 하나가 왜 없을까? 그래서 순간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죠."
"어느 날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노숙자분이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더라구요. 그때 갑자기 그 분이 부러워졌습니다. 저 분은 남에게 도움을 청할 용기라도 있구나."

그때부터 그녀는 (크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의 도움도 받아가면서 어려운 시절을 버텨냈다고 한다.
이제 그녀는 소위 '장현찰'로 통한다고 한다.
그만큼 돈이 많다는 얘기일거다. 또 그만큼 열심히 벌었을 것이다. 행사의 여왕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루에 행사를 12개까지 해봤다고 한다.
그런 날이면 집에 녹초가 되어서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고민도 들었다고 한다.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거지?"
하지만 자기가 산 집에 들어섰을 때 어머님이 환하게 웃으시면서 "우리 딸 왔니?"라고 맞아주면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절실히 느낀다고 한다.

진재영은 이제 사람들 기억 속에 거의 '섹시' 여배우로 남아 있을 것이다.
[색즉시공]이라는 영화에 출연하고나서 얻은 고정된 이미지일 것이다.
그 이후 몇 번 영화에 출연했으나 자신에게 붙은 딱지가 너무나 억울했던지 그녀는 연예계를 떠났다.

원래 부산이 고향인 그녀의 식구는 그녀가 배우로 활약하면서 서울로 모두 이사를 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가 일을 그만두면서 수입원이 없어져버렸다.

어느 날 어머님이 검은 봉지를 하나 들고 들어오시더란다.
무엇인지 살펴보니 식구들이 한 끼 정도 먹을 수 있는 쌀을 사오신 것이었다.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해야겠다는 생각에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연예인이라는 부담 때문에 받아주지 않더란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도, 다른 가게에서도 다 받아주지 않더란다.
당장 자신에게 너무나 소중한 몇천 원을 손에 쥘 기회도 주지 않는 세상이 너무나 밉더란다.

보다못한 부모님께서 드디어 붕어빵을 팔겠다고 리어카를 끌고 나가시는 날까지 왔다.
그녀의 선택은? 여기서 말이 끊어졌지만, 그녀가 연예계로 돌아온 계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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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만큼은 아니지만 내게도 가난은 있었다.

어릴 때는 너무나 배가 고파 쉰 음식을 그대로 먹고 죽다가 살아나기도 했고,
대학교에 가서는 (스스로 자초한 일이겠지만) 라면 하나와 쌀 한줌으로 일주일을 버티기도 하고,
돈이 너무 없어서 뙤약볕에 아현동에서 신촌의 학교까지 내내 걸어다니기도 했다.
하숙비가 없어서 얹혀 살았던 아르바이트 가게 주인집에서는 눈치가 보여 주린 배를 안고 다른 식구들의 밥상을 쳐다보기만 하기도 했다.

가난의 무늬는 같지 않지만 그 고통은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절절하게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가난으로부터 무엇을 삶에 남겼는지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그녀들은 삶에 대한 치열함과 감사를 잊지 않았다.

나는... 단순히 회피만을 배운 것 같다.
이전보다는 가난하지 않다는 현실에 주저앉아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현재에 만족하고,
손쉽게 지갑을 열어 보임으로써 과거를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요즘 몸도 마음도 지쳤다는 이유로 2주간의 휴가를 얻어서
집에서 머리만 잔뜩 굴리고 있었던 나에게
그녀들의 가난은 그렇게 나를 솔직하게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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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우구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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