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이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 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아이팟 터치나 맥북을 경험해 본 몇몇 개발자는 목을 빼고 국내 출시를 기대한 반면, 공짜 폰에 익숙해진 대부분 사람들은 뭐하러 그런 기계를 사느냐고 했습니다. 뭐, 일리 있는 말이었습니다. 통화와 문자 보내기, 음악감상, 사진촬영 정도가 휴대폰의 기능이었으니, 국내 회사들의 뽀대 중심 휴대폰이면 그만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아이폰이 출시되자 갑자기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아이폰 보유자가 무섭게 늘어나더군요. 또 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왜 아이폰을 샀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절대 다수가 그렇게 얘기하더군요. "안 사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라..."

그런데, 재밌는 것은 몇 달이 지난 뒤 그들에게 아이폰 구매 이유를 다시 물어보면 대답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앱과 웹 때문에"라고...

이제 아이폰은 더 이상 한국에서 '충격'이 아닙니다. 하지만 위에서 얘기했듯이 그건 '기억'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 충격이 이미 일상화되고, 흐름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잊고 있는 것이지요.

며칠 전 출판계 사람들과 함께 '전자책의 충격'이라는 책으로 세미나를 했습니다. 다양한 얘기가 나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전자책이 대중화되기는 하겠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봤을 때 생각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었습니다. 현재의 유통 구조, 기술적 난관, 출판사의 수익 구조 등을 고민해 보면 전자책을 통해 수익을 얻기가 쉽지 않아 출판사가 적극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단, 과거와 현재를 기준으로 본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그렇게 전자책은 미풍만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독자, 즉 이용자의 변화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애플식 생태계와 UI를 표준화시켜 버렸습니다. 이제는 이용자들이 휴대폰과 태블릿 PC에 대해서는 애플 제품을 기준으로 비교해 버리게 된 것이지요. 천하의 삼성전자도 갤럭시 시리즈에 아이폰이 표준화시킨 UI를 따르고 있죠.(물론 OS는 다릅니다만...)

이런 경험을 가진 이용자들이 과연 콘텐츠 자체가 좋다고 종이책에 연연해 할까요? 물론 종이책 자체에 애정을 가지는 사람들은 세상이 모조리 디지털화 된다고 해도 존재하겠지만, 인터넷과 차별화 된 UI/UX에 익숙한 세대는 종이책을 선택하느니 차라리 책을 읽지 않고 말 것입니다. 웹에 존재하는 정보를 소비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겠죠.

전자책의 충격은 디바이스와 유통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의 계기이자, 발화점이겠죠. 충격을 강요하는 것은 바로 이용자입니다. 눈높이가 끊임없이 높아져가는 이용자들은 출판사가 변화를 거부하는 순간, 제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외면해 버리는 것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출판사에게는 위기이자 기회인 셈이지요.

아마존 킨들로 시작되어 아이패드에서 절정에 달했던 출판계의 충격은 현실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별 일 아닌 것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용자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그들이 책을 읽는 시간과 디지털 기기를 접하는 시간 중 어느 것이 더 많을까요? 유치원생도 맞힐 수 있는 질문이군요.)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비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전자책 때문에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 덧붙임: 곧 다가 올 미래에 알게 되겠지만, 대중화 된 전자책의 모습과 유통 구조는 지금과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변하겠냐구요? 이용자들과 함께 걸어가다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되겠지요. ^^
Posted by 아우구스투스
,